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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

맛따라길따라go 2025. 11. 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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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5-17 (개역개정)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거의 마지막 때에 제자 베드로에게 "내 양 떼를 먹여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여러분, 가까운 친구가 외국으로 가면서 "친구야, 뒷일을 좀 부탁할게"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뒷일'이 뭔지는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결정이 되겠죠. 정리하지 못한 집을 정리해 달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고, 나중에 주소지가 결정되면 짐을 보내 달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 뒷일이 결정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지난 3년 동안 베드로와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때에 "내 양 떼를 먹이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지난 3년간의 관계 속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 말씀을 듣고 오늘 우리가 당장 "내 양을 먹어야 되겠다"며 양고기 먹으러 가고 그러지 마시고, 과연 베드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를 먼저 이해하고 그다음에 우리한테 적용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준비하신 3가지 장치]


그러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요한복음 21장에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몇 가지 상황을 통해 지난 3년간 있었던 일들을 베드로에게 상기시키고 계십니다.

 

제일 먼저는 요한복음 21장의 시작 부분입니다.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가겠다" 하니 다른 제자들이 "우리도 같이 가자" 하면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제가 만일 요한복음 21장을 연극으로 만든다면, 이 장면 뒤 스크린에 누가복음 5장 사건을 띄워주고 싶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따르게 됐던 사건,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고 있을 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하셔서 예수님을 따르게 된 그 사건을 연상시키듯이 요한복음 21장에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첫 만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상기시키시는 것이죠.


또 하나는 숯불과 생선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숯불에 생선을 올려놓고 빵을 준비하십니다. 여기서 '생선'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옵사리온'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잡은 생선을 좀 더 가져오라"고 하시는데, 사실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큰 물고기는 '익투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물고기 표식 '익투스(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가 먹을 만한 큰 물고기라면, 주님이 말씀하신 '옵사리온'은 반찬거리나 되는 작은 물고기,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다 먹는 생선을 뜻합니다.


왜 주님은 굳이 옵사리온을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사역 중간에 있었던 오병이어 사건을 기억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때 어린아이가 도시락으로 내밀었던 물고기 두 마리가 바로 옵사리온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잡은 큰 물고기(익투스)가 있음에도 옵사리온을 언급하시며 오병이어 사건 때 베드로가 무엇을 배웠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숯불을 피워놓고 계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요한복음 18장, 바로 직전에 대제사장 집 뜰에서 숯불 곁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사건을 기억나게 합니다. 즉, 지난 3년의 시작(빈 그물)중간(오병이어)마지막(부인 사건)을 다 생각나게 하는 장치를 해 놓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오해: 나의 비전인가 하나님의 비전인가]

 

베드로는 당시 로마의 압제 아래서 메시아가 오시면 유대인을 해방시켜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처음 동생 안드레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했을 때 베드로는 모든 일을 버려두고 예수님께 갔고, '게바(베드로)'라는 이름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누가복음 5장에서는 다시 고기를 잡고 있었을까요?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베드로가 기다리던 메시아는 '람보' 같이 근육질에 힘센 영웅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예수님은 30대지만 고생해서 50대처럼 보이는, 비쩍 마른 젊은이였죠. 실망했을 겁니다. 안드레를 혼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고기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문이 들립니다. 그 '비쩍 마른 젊은이'가 병자를 고친다는 겁니다. 다시 가보니 정말입니다. '큰일 났다, 메시아를 못 알아봤구나' 하는 생각에 밤새 고기가 안 잡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고 말씀을 전한 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순종했더니 엄청난 고기가 잡힙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사건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너는 조국 해방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 나약해 보여서 안 된다는 거지? 그럼 내가 너에게 고기를 주면 그걸 담을 배는 준비되어 있니?"


우리는 이 본문을 보며 "큰 배를 준비하자"라고 적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너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다. 네가 내 비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하나님의 비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베드로는 자신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첫 사건을 통해 배워야 했습니다.


[오병이어와 물 위를 걷는 사건의 교훈]


오병이어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2만 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을 때 제자들은 "이들을 보내서 각자 먹게 합시다"라고 합리적인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십니다. 그리고 안드레가 가져온 작은 도시락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신이 났을 겁니다. "줄 서세요, 더 드세요" 하며 친절하게 나눠줬겠죠. 하지만 이게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빵을 이렇게 주니까 더 잘 받아지네?" 하며 자기 공로가 1%쯤 섞인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친절함은 사라지고 "아까 먹었잖아!" 하며 조교처럼 변해갑니다. 교회나 선교지에서 무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면, 이미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을 보시고, 즉시 그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보내십니다. 그리고 산에 가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풍랑을 만납니다. 주님이 바람과 파도를 동원해 그들의 '열기'를 식히시는 중인 거죠. 새벽 4시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실 때 제자들은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합니다. 즉, 이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덜 식은 사람이 하나 있었죠. 베드로입니다. "주님, 저도 물 위를 걷게 해주십시오." 주님은 "오라" 하십니다. 이는 기도 응답이라기보다 "너는 아직 덜 식었으니 물 좀 먹어야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며 다시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일손이 부족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시키기 위해 초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의 헌신과 좌절]


주님이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그리 마옵소서, 제가 주와 함께 죽겠습니다"라고 장담합니다. 베드로의 이 의리와 헌신은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쫓아간 베드로는 칼을 든 군병 앞이라면 차라리 순교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너무나 약한 시험, 작은 하녀의 "너도 그 도당이지?"라는 말 앞에 무너져버립니다. 자기 헌신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베드로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요한복음 21장으로 돌아옵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고 들어오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그 순간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외칩니다. 베드로는 물로 뛰어듭니다.
숯불 앞에서 주님은 베드로를 '확인 사살' 하십니다. 숯불, 옵사리온, 빈 그물... "베드로야, 네 열정, 네 헌신 죽었니? 네 비전도, 네 능력도, 네 열정도 아니란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아가파오)?"
베드로는 감히 "아가파오(신의 사랑)"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좋아합니다(필레오 - 우정)."
세 번째 주님이 물으실 때 베드로는 근심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좋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 대답은 이렇게 들립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까불었습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님 이제부터 열심히 주님을 알아가겠습니다."
주님은 "그래, 그 정도면 됐다.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적용: 내 양을 먹이라]


이 아침에 저는 두 가지로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번역 선교회 소속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파샤이 종족처럼 말은 있지만 글자가 없는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언어를 배우고 글자를 만들어 성경을 번역해 주는 일, "너희가 아는 범위가 아니라 내 양,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그 양들을 먹여주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둘째, "우리 곁에 와 있는 이주민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동두천에서 태국인 사역을 하는 목사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국인 자매가 낳은 '하영'이라는 아이가 심장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술비가 없어 발을 구를 때, 서울성모병원에서 8억이 넘는 비용을 지원해 주셨고, 2차 수술까지 총 10억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 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차피 갈 아이를 위해 왜 10억이나 낭비하십니까?" 인간의 셈법으로는 낭비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 부모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우리는 보이지 않던 한 영혼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열정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져서, 하나님의 비전과 뜻을 이해하고 평생 주님과 동행하며 신의 성품에 이르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비전, 우리의 능력, 우리의 열정에 머물지 않도록 때로 낯설게 다가오셔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시고, 우리의 삶을 깨뜨리시며 그 깨진 틈 사이로 진리와 영광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늘에 속한 자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성찬 선교사 (온누리교회 인천캠퍼스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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